전정각산은 부처님이 되기 전 싯다르타가 정각할 자리를 찾기 위해 올랐던 산이다. 산 속 동굴에 자리를 잡고 깨달음을 이루려 했지만 산신들이 자리가 좋지 못하다며 보리수 나무를 추천했다. 싯다르타가 일어나자 굴에 있던 용이 여기서 정각을 이뤄 달라고 간청해 싯다르타는 그림자를 남긴 것이 전정각산 유영굴의 유래다. 전정각산을 오가는 길은 오프로드의 끝판왕이었다. 보드가야의 포장도로가 끝나자마자 만나는 비포장 도로는 울퉁불퉁 그 자체였다. 오토바이 뒤에 앉아 있는데 언제 어디로 튕겨져 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런 길이었다.
불가촉 천민 미소는 브라만
전정각산 가는 길의 마을에는 불가촉 천민들이 살고 있다. 오토바이 청년에 따르면 불가촉 천민 남성들은 출신성분 때문에 하루 꼬박 일을 해도 겨우 100루피 우리돈 1600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고된 노동으로 술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아 처자식이 길 위로 나서 구걸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맨발에 형편없는 옷차림이지만 해맑게 웃고 있었다. 마을은 또 왜 이리 평온한지. 손으로 소똥을 동그랗게 만들어 집 벽에 붙이는 게 가장 인상 깊었다.
전정각산 유영굴 내 부처님의 흔적은 정말 초라했다. 나름 불교 유산인데 이를 이용해 돈을 벌어보려는 인도인만이 있어 더욱 아쉬웠다. 길 위의 아이들에게 돈은 줄 수 없고 비스킷을 나눠줬다. 이마저도 원숭이가 몇 개는 훔쳐갔다. 정말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수자타 마을로 내려갔다. 수자타는 싯다르타에게 우유죽을 공양한 인물로 수자타 공양은 성도를 이루는데 일조한 공양으로 평가받는다. 수자타 마을에는 법륜 스님이 불가촉 천민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다. 코로나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오토바이 청년이 거대한 보리수 나무로 데려다준다며 나이란자나 강을 건넜다. 이 강은 고행을 포기한 사문 싯다르타가 목욕한 강으로 건기라 강물은 없었지만 모래가 한가득이었다. 좌우로 심히 왔다 갔다 하며 모래를 헤치고 나가는 우리 오토바이 청년 정말 대단했다. 아침 햇살을 머금은 보리수 나무를 보니 경외심이 절로 들었다. 모진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견디어 낸 자태란.
보드가야 가이드 Iffu 땡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야역에도 태워 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역시나 노 프라블럼이란다.. 오토바이 청년은 마을 우물 만들기, 여성 미싱 교육 등 빈민 구제 활동을 한다며 자국에 돌아가면 30달러 정도 후원해 달라고 했다. 오토바이 청년의 1박 2일 호의 밑바탕에는 후원금을 받기 위한 계획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후원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렇게 성심성의껏 남을 도울 수 있을까. 숨은 뜻은 차치하고 보드가야 여행에 도움을 준 Iffu에게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