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의 그늘
세상이 바뀌어 간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국처럼 바라나시 밤 기차에서도 다들 스마트폰만을 보고 있었다. 유심도, 로밍도 없이 여행하고 있기에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 내심 서운했다. 하지만 참 부질없는 서운함이고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였다. 먼저 입장을 바꿔 나라면 기차에서 외국인을 봤다고 굳이 말을 걸었을까? 근데 그걸 왜 남한테서 바라고 서운해하는 것인지. 나의 감정이 타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 이보다 어리석은 것이 있을까.
더 어리석은 것은 분명 과거 집착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만 초점을 두고자 인도 여행을 왔는데 한심하게도 지난 여행과 끝없이 비교를 했다. 첫 인도 여행 때는 어디를 가나 인도인들이 말을 걸어주고 항상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던 추억에 취해 말이다. 제발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현재의 태양 아래서만 살자아아아아아.
역시나 인도는 인도
아침이 되고 승객들이 하나, 둘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아가 여행자의 끼니를 걱정해 줬다. 한 분이 여행 경로 관련해 이 기차는 바라나시에서 꽤 먼 기차역에 정차해 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바라나시 다음 여정인 보드가야에 가기 위한 가야역에는 바로 간다며 그냥 타고 가라고 조언했다. 자리도 없는데 어떻게 가냐고 했더니 그냥 승무원에게 돈 더 내면 된다고 했다. 승무원에게 말했더니 잔돈이 없었던 건지 귀찮았던지 그냥 가라고 했다. 말 그대로 무임승차로 바라나시부터 가야까지 갔다. 그렇게 14시간에 걸쳐 델리서 바라나시가 아닌 보드가야에 도착했다. 정말 생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역시나 보드가야에서도 인도스러움을 고스란히 경험했다. 오토릭샤를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한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다가오더니 마하보디 사원이 있는 보드가야는 허가된 릭샤만 들어갈 수 있다며 뒤에 있던 자기 친구들도 쫓아 버리고 자기 오토바이로 갈아타란다. 그냥 자석에 끌리듯이 갈아탔다. 정말로 아무 조건 없이 한국 절인 고려사에 내려줬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고려사는 코로나 이후 운영을 하지 않아 다른 한국 절인 분황사로 가야 했다. 깜깜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날은 너무 더웠고, 장시간 기차 여행으로 심신은 지쳤고. 하지만 놀랍게도 고려사를 나오니 오토바이 청년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이 되어 기다리고 있었단다. 다시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분황사로 향했다. 이번에는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알아보고 알려달란다. 다행히 분황사에 묵을 수 있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는데 보드가야 안내를 해줄 수 있다며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다. 전화도 인터넷도 불가능해 일단 마하보디 사원에 6시에 갈테니 그 앞에서 보기로 했다.
남성 호르몬 부족인가
마하보디 사원 안에서는 어떤 전자기기도 어떤 가방도 소지할 수가 없다. 맨 몸으로 마하보디 사원으로 향했는데 가는 길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진짜 남성 호르몬이 부족한가. 물을 기르는 어린 여학생들, 축구를 하는 남학생들, 염소를 몰아가는 친구들, 흙 놀이를 하는 유아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어른들 모두 하나같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경적 소리 하나 없이 웃음소리와 노을빛으로 가득했던 그곳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어쩌면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로 손꼽히는 곳인데 내게 없었던 웃음과 평온이 가득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만면에 미소를 띄기 위해 노력했다.
우아한 마하보디 사원
밤의 마하보디 사원을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가 있을까. 정말 멋지고 우아했다. 아쇼카 왕때부터 내려오는 돌기둥, 소탑서 바라본 대탑의 아름다움, 마하보디 사원 내 부처님께서 참선을 하셨다는 7곳의 고즈넉함과 주옥같은 부처님 말씀 등이 어우러져 마하보디 사원은 인도 속 또 다른 세상이었다.
사원을 나오니 아니나 다를까 오토바이 청년 Iffu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 정각산과 수자타 마을 관광을 도와주겠다 해 7시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대체 몇 시간을 기다린 것일까.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미안했다. 문제는 헤어지고 났더니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이 펼쳐졌다. 용기를 내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국 절에 가는 길을 물었더니 자기만 따라오란다. 그런데 현지인이 살고 있는 미로 같은 골목길로 안내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지만 골목길에서 만나 인도인의 모든 질문과 인사에 최대한 화답했다. 자기 집에 들러 짐을 놓고 자기 아들과 함께 분황사까지 안전하게 에스코트해줬다. 사실 여행 중 만난 모든 인도인들은 누구보다 착하고 순수했으며, 외국인 여행자의 일은 마치 자기 일 인양 발 벗고 나섰다. 외국인을 등쳐 먹는 일부 사기꾼과 몇몇 성 관련 안 좋은 뉴스로 인도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아 참으로 안타깝다.
분황사 동자승 통해 약점 재확인
분황사는 한국 불교계에서 지원하는 보드가야 한국 절로 Sati School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어린 인도 학생들을 스님으로 길러내는 곳이다. 명상 위주의 불교 교육과 영어, 힌디어, 수학 등의 교과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9세 인도인 동자승으로부터 다시금 약점을 깨닫게 됐다. 그간 영어로 의사소통하며 한 번에 대화가 이뤄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다들 여행자니 너그럽게 뭐라고 다시 얘기해줄래 했었는데 이 동자승은 한국식 영어 발음과 억양을 지적하며 알아먹지 못하겠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알려줬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어 공부에 쏟은 그간의 세월이 부질없었다니. 동자승한테 명상하는 법도 배우고 영어 발음 교정도 받았다. 자기는 커서 스님보다는 사업가가 돼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부디 그 꿈 꼭 이루길.
인도여행 Tip (2022년 7월 기준)
1. 바라나시 여러 기차역 중 DDU말고 Baranasi Junction Railway Station 혹은 Varanasi Railway Station으로 가야 우리가 아는 갠지스강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2. 보드가야 내 한국 절인 고려사는 운영하지 않으니 Sati School(분황사)로 찾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