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에서의 첫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하지만 마음은 잔뜩 설렜다. 오늘은 달라이라마를 친견하는 날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땅, 낯선 길이었지만, 그 설렘 하나로 모든 것이 즐거웠다. 평소 같았으면 이 시간에 눈을 뜨지도 않았을 텐데, 오늘만큼은 5시에 기상했다. 여행지에서는 이런 부지런함이 절로 나온다.
7시, 숙소를 나서려는데 게스트하우스 주인분들이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너무 여유로운 분들이셨다. 차 한 잔 마시고, 옷 차려입고, 그렇게 8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다. 차로 10분 거리라고 했는데, 촉람사로 향하는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도로는 마비 수준이었다. 한국의 명절 귀성길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렇게 도착한 촉람사,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경건한 분위기였다.
달라이라마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지만, 생소한 언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순간, 이곳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리고 문득, 한국에서도 이런 마음을 잃지 않길 바랐다.
일상의 바쁨 속에서도 이 평온함과 따뜻한 미소를 간직하길.
티칭이 끝나고 인파가 빠져나가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2층 식당에 올라가 모모 한 접시를 시켜놓고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표정에서, 움직임에서 달라이라마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모일 정도로, 그 존재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레 왕궁과 냠갈 체모 곰파였다.
🚶♂️ 촉람사로 향하는 길, 그 끝없는 행렬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이미 늦은 기분이었다. 도로는 인파로 가득했고, 차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 모두가 촉람사로 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보로 이동하는 이들도 많았고, 마치 거대한 축제의 행렬처럼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은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엄청난 규모였다.
도착하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미 자리 잡은 사람들은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고, 늦게 온 사람들은 조용히 자리를 찾았다. 그 안에서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소 더디고 고된 길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더욱더 특별한 순간이 완성되는 듯했다.
🎤 달라이라마 티칭, 말보다 깊이 전해진 감동
티칭이 시작되자 공기가 달라졌다.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는 달라이라마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와 표정,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만으로도 그 의미가 전해졌다. 때로는 단어보다 더 강한 것이 감정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됐다. 한국에서도 이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티칭이 끝나고 사람들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전보다 더 평온해 보였다.
🍜 2층 식당에서 바라본 인파, 그리고 모모 한 접시
자리를 빠져나와 근처 2층 식당으로 향했다. 내려다보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도 어딘가 고요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조급함이 사라진다.
모모 한 접시를 시켜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라다크의 이 분위기, 이 여유로움을 잊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순간을 맞이할 때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삶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바로 여행의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싶었다.
🏰 레 왕궁, 높은 곳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
레 왕궁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찼다. 하지만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보이는 풍경은 모든 수고를 잊게 만들었다. 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왕궁은 그 자체로도 멋스러웠다. 오래된 벽과 계단,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역사까지. 잠시 벤치에 앉아 쉬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햇살이 따뜻해서인지, 여행의 피로가 쌓여서인지 모를 일이었다.
⛩️ 냠갈 체모 곰파, 부처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
레 왕궁 뒤편, 냠갈 체모 곰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을 올라야 했기에 쉽지 않은 길이었다. 세 걸음 걷고 한 번 쉬고, 그렇게 천천히 올라갔다. 하지만 곰파에 도착한 순간, 모든 것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법당 안에서는 스님의 염불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소리와 향 내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잠시 눈을 감고 그대로 그 분위기에 스며들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그 어떤 곳보다도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 레로 돌아가는 길, 그리고 새로운 인연
레로 돌아가는 버스를 잡기 위해 도로로 나왔다. 그런데 버스는 이미 만석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매달려 타야 했는데, 이곳에서는 그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여행사 앞에서 20대 미국인 여성과 대화를 나눴다. 판공초 투어 정보를 찾고 있던 그녀에게 계획한 일정에 대해 설명했더니, 같이 가겠다고 했다. 헌데 바로 옆에 있던 50대 벨기에 여성이 자기도 함께 하고 싶다며 다같이 여행사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그곳에서 판공초 투어 일행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또 다른 60대 인도인을 만났다. 마치 운명처럼 그렇게 국적도 나이도 다른 사람들과 4박 5일의 여행을 함께하기로 했다.